창세기 첫 장을 열 권짜리 운문으로 정황하게 담은 따분한 논평

 

볼테르가 존 밀턴의 대서사시 『 실낙원 Paradise Lost 』에 내린 평가다.

볼테르의 지적은 틀렸다. 실낙원 』은 주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인데, 아담과 이브는 창세기 둘째 장에 가서야 등장한다.

 실낙원 』은 천국에서 추방당한 사탄의 이야기와, 에덴 동산에서 놋의 땅으로 떨어진 인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꽤 우울한 시지만, 영어로 쓰인 서사시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로 쓰인 서사시가 이것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Pandemonium[판데모니움]이라는 말이 유래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사탄은 천국에서 쫓겨나 지옥에 떨어지자, 우선 자신이 살 집을 장만하기로 한다.

그래서 타락한 천사들을 불러모아 거대하고 흉측한 궁전을 짓게 했다.

Pantheon('모든 신'의 신전)에서 착안하여, 자신의 새 집 이름을 '모든 악마'라는 뜻의 Pandemonium이라 붙였다.

 

그밖에도 존 밀턴은 단어 만들기를 무척 좋아했다.

적절한 단어가 없다 싶으면 만들어 썼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Impassive: 고통을 느끼지 않는, 감정이 없는
  • Obtrusive: 눈에 거슬리는
  • Jubilant: 환희에 찬
  • Loquacious: 수다스러운
  • Unconvincing: 설득력이 없는
  • Santanic: 악마 같은
  • Persona: 인물, 가면, 페르소나
  • Fragrance: 향기
  • Beleaguered: 포위된
  • Sensuous: 감각적인
  • Undesirable: 달갑지 않은
  • Disregard: 무시하다
  • Damp: 축축한
  • Criticise: 비판하다
  • Irresopnsible: 무책임한
  • Lovelorn: 실연당한
  • Exhilarating: 짜릿한
  • Sectarian: 종파의
  • Unaccountable: 설명 불가능한
  • Incidental: 부수적인
  • Cooking: 요리하기

이것들 전부 밀터가 만든 말이다.

가히 Wording(단어 사용)의 귀재라고 할 만하다. 아, Wording도 밀턴이 만들었다.

놀랍지 않은가? 경이에 찬(awestruck) 느낌이다. 이 말도 밀턴이 만들었다.

Stunning(깜짝 놀랄)하고 Terrific(무시무시한, 굉장한)한데, 역시 이것도 밀턴이 만들었다.

 

또한 밀턴은 독실한 청교도였기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온갖 나쁜 개념에 대한 단어도 만들었다.

밀턴이 아니라면 Debauchery(방탕), Depravity(타락), Extravagance(방종, 사치)도 없었으니,

세상에 Enjoyable(즐길 만한)한 게 하나도 없을 뻔했다.

이쯤이면 눈치챘겠지만, 전부 밀턴이 만든 말이다.

 

사람들은 밀턴에게 '이젠 그만하라'고 수도 없이 말했을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들은 더 하려고 드는 경향이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 걸 Unintended Consequences(예기치 않은 결과)라고 한다. 오 이런, Unintended도 밀턴이...

하지만 밀턴도 자신이 만든 말이 이 책의 제목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로 삼은 단어 Etymologicon은 '어원 사전'이라는 뜻이다.

밀턴이 '결혼의 무효성'을 주제로 쓴 평론에 처음 등장한 단어이다.

 

Be all ears(열심히 귀 기울이다)와 Trip the light fantastic(춤추다) 같은 어구도 밀턴에게 유래했다.

각각  쾌활한 사람 L'Allegro 』라는 시와  코무스 Comus 』라는 희곡에서 유래했다.

테니스 경기에서 듀스에 이어 한쪽이 1점 앞선 상황을 Advantage라고 하는 것도 밀턴이 처음 생각했다.

 

Wherefore with thee, Came not all Hell broke loose?
어찌하여 그대와 함께, 지옥 만물이 탈주하여 오지 않았는가?

 

All hell breaks loose(아수라장이 되다)도  실낙원 』에서 나온 표현이다.

지옥에서 탈출해 에덴 동산으로 온 사탄에게 호기심 많은 천사가 물었다.

 

Space may produce new wordls
우주가 새 세상을 낳을 수도 있으니

그밖에도 밀턴이 만든 말들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기행을 펼치는 그 일론 머스크도, 존 밀턴에게 감사해야 한다.

밀턴이 아니라면 Space travel(우주 여행)도 없었다. 단어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Space는 밀턴이 태어나기 수백 년전부터 있었지만, 별 사이의 광활한 공간을 가리키는 데 이 단어를 쓴 건 밀턴이 처음이었다.

사탄이 타락한 천사들을 위로하면서 비록 자기들은 천국에서 쫓겨났지만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장면에 나온다.

그 덕분에 우리는 Outer space(우주 공간), Space station(우주 정거장), Space ship(우주선) 같은 말을 쓰게 되었다.

 

Was I deceived, or did a sable cloud turn forth her silver lining on the night?
내가 현혹된 것인가, 아니면 칠흑 같은 구름이 밤중에 은빛 테두리를 드러낸 것인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A Space Odyssey>와, 그 제목을 패러디한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Space Oddity>에도 나오게 되었다.

아마 존 밀턴이 살아있었다면 저작권료를 쓸어 담고 있었을 것이다.

영국 뮤지션 제프 백의 <Hi Ho Silver Lining> 같은 노래 때문에 말이다.

Silver lining(구름의 은빛 테두리, 절망 속의 희망)이라는 말도 밀턴이 만들었다.

 

역시 밀턴이 만들었지만 인기를 못 얻고 잊힌 단어를 빌려보자.

지금 이 글은 너무 Quotationist(남의 글을 습관적으로 인용하는 사람)이다.

그럼 이제 밀턴의 글은 그만 인용하고 Pastures new(새 출발, 새로운 장)로 나가보자.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At last he rose and twitched his mantle blue, Tomorrow to fresh woods and pastures new.
마침내 그는 일어나 파란 망토를 휙 젖혔네. 내일은 새 숲과 새 풀밭으로.

이제 Silver lining은 잊고, Cloud에 한번 주목해보자.

 

 

출처 :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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